같이 놀아요
가만히 좋아하는-김사인 시집 본문
부시,바쁜
바쁜 너는 무섭다
바쁜 너는 성난 사람처럼 보인다
너는 땅을 팍팍 걷어차며 걸어간다
너는 발가락과 뒤꿈치와 종아리의 힘줄과
무릎뼈에게 감사할 겨를이 없다
너는 '급한 일이니 힘들겠지만 같이 좀 애써다오'하고
다리에게 발에게 신발에게 땅에게 바람에게
부탁할 틈이 없다
오직 너는 바쁘고 바쁜 너는 무섭다
너는 한대 올려치러 가는 사람처럼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너는 마침내 한 대 올려친다
코뼈가 휘고 턱이 금 간 사람은 울 것이다
네 손가락들과 팔도 아플 것이다
그러나 너는 네 주먹에게도
미안해할 틈이 없다
중차대한 일로 바쁜 까닭에
맞은 유색인 사내의 치욕과
그의 가난한 아내와 못배운 부형들과
땟국 흐르는 그의 자식들의 설움을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너는 세계를 좀더 안전하게 지켜야 하므로
사실을 말하자면
네가 바쁜만큼 세계는 흔들리고,
세계가 불안해 너는 또 바쁠 것이므로
바쁨의 명분은 영원히 바닥나지 않을 것이다
너의 바쁨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바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또 얼마나 당당한 일인가
바쁘기 위해서는 얼마나 바쁘게 애써야 하는가
얼마나 무섭게 애써야 하는가
바쁘다는 것은 고독한 일 그러나 너는
다행히 울 줄 모른다
바쁜 너는 밤 숲의 쏙독새 울음을 들어서는 안된다
봄 산의 애기똥풀꽃을 보아서는 안된다
늙은 어머니의 가늘게 코고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된다
비애와 평화와 휴식은
바쁜 영혼을 좀먹는 병균과 같으므로
먹어치우기 위해 밥은 있고
쉬어치우기 위해 숨은 있을뿐
너는 오늘도 오직 바쁘고
바쁜 네 눈은 사납다
나는 다만 바쁘게 움직이는
다리 사이 호두 두 알이
영문도 모르고 얼마나 시달릴까를 생각하며
다소간 딱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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